
명쾌하고 스마트한 피킹솜씨로 80년대 바로크 속주기타 출연에 지대한 영향을 준 알 디 메올라는 1954년7월 22일 미국 뉴저지의 버젠필드에서 태어났다. 8살때부터 기타를 시작한 그는 이웃에 사는 재즈 기타리스트 로버트 애슬래니언(Robert Aslanian)으로 부터 기타레슨을 받았다. 애슬래니언은 그에게 악보 읽는 법과 기교 등을 익힐 수 있게끔 해주었다. 하지만 그는 보다 깊은 음악적 영감을 위해 덕 왓슨(Doc Watson), 케니 버렐(Kenny Burrel), 탈 팔로우(Tal Farlow) 등의 연주를 들었다. 그러나 그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뮤지션은 래리 코리엘(Larry Coryell)이었다. 래리의 선구적인 퓨전기타를 접한 그는 자신의 기타 세계의 좌표를 설정할 수 있었다.
71년 그는 기타리스트들의 전당인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에 입학했다. 여기에서 그는 배리 마일즈(Barry Miles)를 알게 되고 그가 이끄는 4인조 밴드에 픽업된다. 74년 배리 마일즈와 6개월간의 연주를 마친 그는 편곡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버클리에 입학했다. 그러나 이 수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의 친구 중 한명이 그의 기타 연주를 녹음해서 칙 코리아(Chick Corea)에게 보냈는데, 그 연주를 들은 칙이 알 디 메올라를 뉴욕으로 부른 것이다. 이틀 후 알 디 메올라는 칙 코리아 리턴 투 포에버(Chick Corea's Return To Forever)와 함께 카네기 홀에서 연주를 가질수 있었고, 그 다음 날에는 애틀란타에서 수만명의 관중을 상대로 대대적인 공연을 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는 칙코리아의 RTF에서『Where Have I Known You Before』(74),『No Mistery』(75),『Romantic Warrior』(76) 등의 역작들을 낳는데 기여했다. RTF 활동 도중 알 디 메올라가 솔로 데뷔 앨범『Land Of The Midinight Sun』을 내놓게 되는데 이 앨범이 대히트가 되어 버린면서 곧 RTF의 해체소식이 돌았고 멤버들 각자 자신의 길로 떠나 버리게 되었다.
이후 그는 솔로로 활동하며 83년까지 여섯 장에 이르는 기타 명반들을 제작하여 명실공히 최고의 퓨전기타리스트 중의 하나로 떠올랐다. 특히 이 당시의 앨범들 중『Land Of The Midinight Sun』(76)과 『Elegant Gypsy Suite』(77)은 오른손 손목 기능을 최대한 살린 얼터네이트 속주피킹의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으로 잉베이 맘스틴, 비니 무어, 크리스 임펠리테리 등에게 많은 영향을 준 바 있다. 이후에도 알 디 메올라는 솔로활동과 병행해 존 맥러플린, 파코 드 루치아 등과 함께 기타 트리오에서 다시 활약하며 놀라운 어쿠스틱 기타 인스투루멘틀의 세계를 다시 보여 주었다.
기타사에 끼친 알 디 메올라의 영향은 참으로 큰 것이다. 특히 테크니컬한 면을 발전시킨 공로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르페지오를 응용한 합리적인 속주피킹이나 뮤트피킹 등 피킹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될 만큼 수준 높은 경지를 들려주었으며 뿐만아니라 남미의 리듬과 정서에 관심을 쏟아 락과 재즈의 어법으로 그것을 음악화해 좀 더 대중 속으로 들어가게 한 것도 그의 공로이다. 조밀하게 쏟아내는 정교한 경과음의 세계와 한음 한음이 명확하게 자기 주장을 하는 속주 프레이즈, 그리고 그 곳에 깔린 특유의 애상감은 진정 알 디 메올라에게서만 볼 수 있는 기타미학이다. 90년대로 들어와 알 디 메올라는 그간의 일렉트릭 기타에서 완전히 탈피해 완전 어쿠스틱 기타쪽으로 돌아서 마치 종교적 달관의 경지가 느껴지는 무념무상과 열반 사색적인 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